김아몬드의 공책
여정1 (旅程) : 여행 중에 거쳐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여정2 (旅情) : 여행할 때 느끼게 되는 외로움이나 시름 따위의 감정 다들 갑자기 그냥 왠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나도 그랬다. 버스든 기차든 일단 타고 아무 생각없이 떠나고 싶었다. 친구에게 아무데나 갈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군산. 군산이라...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한번도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창밖을 보니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잠을 청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비가 더 많이 오는 듯 했다. 원래 예상치 못한 변수덕분에 여행이 낭만적이 되는 거라 애써 생각하며 터미널로 향했다. 지금 이 여행 자체가 예상치 못한..
ㅡ 이은규, 별이름 작명소 고단한 잠은 멀리 있고나를 찾지 못한 잠은누구의 호흡으로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있을까 나는 아직아름다운 운율에 대한 정의를잠든 그의 숨소리라고 기록한다 두 눈을 꼭 감으면 잠이 올 거야, 없는 그가 다독이며 말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두 눈을 꼭 감으면 감을수록떠도는 별들이동공의 어두운 웅덩이를 찾아와 유성우로 내렸다 밤새 유성우로 내리는 별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면차가운 호흡과별들이 돌아가는 시간이 꼭 알맞았다 오랫동안 성황을 이룰, 별이름 작명소 잠을 설친 새벽이 눈뜰 때마다 검은 액자 속 한 사람과 마주쳤다날마다 희미해지는 연습을 하는지명도를 잃어가는 사진 한 장 별이 태어나는 차가운 먼지 구름 속아무도 그가 먼지구름에 도착했다는 안부를 전해주지 않았다어떤 별의 소멸은 아직..
ㅡ 문정희, 비망록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기도를 하고밤이면 고요히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ㅡ 박준, 여름에 부르는 이름 방에서 독재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 하고 불안해 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광어를 아예 관상용으로 키우던 술집이 있었다 그 집 광어 이름하고 내 이름이 같았다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나와 같은 이름의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벽면에서 난류를 찾아내는 동안 주름이 늘었다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약풍과 수면장애 강풍과 악몽 사이에서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