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몬드의 공책
ㅡ 황인숙, 일요일의 노래 북풍이 빈약한 벽을휘휘 감아준다먼지와 차가운 습기의 휘장이유리창을 가린다개들이 보초처럼 짖는다 어둠이푹신하게깔린다 알아?네가 있어서세상에 태어난 게 덜 외롭다
ㅡ 허연, 얼음의 온도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있는 사람은 한명씩 있다너무 쉽게 잊기엔 아쉽고다시 다가가기엔 멀어져 있는 그런 사람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너에게 빠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ㅡ 이훤, 점령 미소 하나로 너는 내 맘을 군림했다매번달가운 점령이었다 일생을 패하기로 한다
ㅡ 진은영,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슬픔은 가장 사랑스런 보석일거요,모든 사람이 그리 아름답게 슬픔을 착용한다면.— 세익스피어, 『리어왕』 너와 만났더라면가을 하늘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을 거야서정주나 세익스피어, 딜런 토마스너와 같은 별자리에서 태어난 시인들에 대해종이배처럼 흘러가버린 봄날의 수학여행과친구들의 달라진 옷맵시에 대해 나뭇잎이 초록에서 주황으로 빠르게 변하는 그늘 아래우리가 함께 있었더라면너는 가수가 되는 꿈에서 시인이 되는 꿈으로도에서 라로, 혹은 시에서 미로건너뛰었을지도 모르지노래에서 노래로, 삶에서 삶으로 그것들은 서로 가까이 있으니까누군가의 손으로 흩어졌다그 손에 붙들려 한곳에 모여드는 카드 패들처럼 그러면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아빠는네가 2학년 3반이었는지, 4반이..
ㅡ 이은규, 아직 별들의 몸에선 운율이 내리고 엄마는 왜 가르쳤을까자신에게 진실하면 너는 늘 옳다 불가능의 시대에 혁명을 부르짖는 것혹은 별을 노래하는 것만큼, 허영을 채워주는 일도 드물다는 당신의 편지를 노려보았다밤새 가는 실핏줄 터지는 소리 한 혁명가의 꿈을 꾸는 밤다리를 저는 그녀와 보폭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기다리기만 하는 자에게 올바른 순간이란 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더 잘 실패한 후에 맞게 될 적기 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나는 혁명을 과거사라고 믿는 당신에 불과할 것이다아직 별들의 몸에선 운율이 내리고당신과 나의 정체는 우리 자신을 앞지르며 밝혀질 것 얼음이 떠다니는 운하 속으로한 시대가 던져지기 직전, 오고갔다는 문답 정체를 밝혀라그건 알아서 결정하시죠수배자 사진을 보니 틀림없군당신이 그렇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