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몬드의 공책
ㅡ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ㅡ 문정희, 목숨의 노래 너 처음 만났을 때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같이 살자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ㅡ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ㅡ 허연,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 그대는 오지 않았네 삐뚤어진 세계관을 나누어 가질그대는 오지 않았네 나는 빛을 피해서 한없이 걸어가네 나는 들끓고 있었다모두 다 내주고 어느 것도 새 것이 아닌 눈동자만 남은 너를 기다렸다밤이 되면서 퍼붓는 어둠 속에 너는 늘 구원처럼 다가왔다철시를 서두르는 상점들을 지나 나는 불빛을 피해 걸어간다행여 내 불행의 냄새가 붉은 입술의 너를 무너지게 했는지무덤에도 오지 않을 거라고,보도블록 위에 토악질을 해대던 너를 잊을 수는 있는 것인지나는 쉬지 않고 빛을 피해 걸어간다도대체 얼마나 많은 당신들이 저놈의 담벼락에다 대고 울다 갔는지이 도시에서 나와 더불어 일자리와 자취방을 바꾸어가며이웃해 사는 당신들은 왜 그렇게 다들 엉망인지가면 마지막인지왜 아무도 사는 걸 가르쳐주지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계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영화들은 많다. 이나 와 같은 고전 걸작까지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제는 할리우드의 히어로 블록버스터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물론 이 커다란 시리즈를 그들과 동급의 반열에 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여러모로 다른 의미로 (이하 인피니티 워)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의 새 지평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커다란 족적이자 기념비같은 작품이다. 2008년에 이 개봉했을 때, 마블 스튜디오와 케빈 파이기는 라는 프랜차이즈를 영화화할 구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지금, 어벤져스와 MCU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리고 앞으로도 벌어들일 최고, 최대의 프랜차이즈 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