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몬드의 공책
(2017년 7월 6일 작성글) <스파이더맨 : 홈 커밍>, MCU의 미래 본문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현존 최고의 상영관이라는 코엑스 메가박스 MX관에서 <스파이더맨 : 홈커밍>을 봤다. 이 MX관은 본래의 M2관을 새롭게 리뉴얼한 것인데, 예전에 M2관이었을 때에 비해서 리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좌석이 좀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사운드는 여전히 끝내줬다! 그리고 메가박스에서 파는 스파이더맨 콤보를 샀다! 반반팝콘에 콜라 두잔 (스파이더맨 컵에 나온다!)이 나오고 무려 스파이더맨 머리를 준다! 이 안에도 팝콘이 담겨 나왔는데 다 먹고 씻어서 내 방 서랍 위에 올려놨다. 은근 잘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의 첫 MCU 솔로무비이다보니 할 말이 많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 (이하 <홈커밍>)>은 태생적으로 샘 레이미가 감독하고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랑코 등이 출연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와 마크 웹 연출에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데인 드한 주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2000년대 초 <엑스맨> 시리즈와 함께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성공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실제로 마블이 이 <스파이더맨>의 성공을 보고 마블 스튜디오를 차려 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를 계획하게 됐다고 했으니까. 특히나 <스파이더맨 2>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이전까지 역대 최고의 슈퍼히어로 무비였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문제는 이 성공에 지나치게 도취된 소니가 <스파이더맨 3>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현장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결국 <스파이더맨 3>는 트릴로지 중에서 가장 좋지 않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샘 레이미 감독과 출연진들은 <스파이더맨 3> 이후의 속편에도 모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소니의 이러한 횡포에 샘 레이미 감독이 하차하면서 소니는 시리즈를 리부트하기로 한다. 그렇게 나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분명히 이전의 <스파이더맨>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먼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웹 슈터로 나간다는 원작 코믹스의 설정을 따랐고 피터 파커의 성격 역시 원작 코믹스대로 싸우면서도 쉴새 없이 입을 놀리는 수다스럽고 유쾌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는 전작 <스파이더맨>의 찌질하고 어두운 스파이디가 더 좋다는 사람들과 원작대로 수다스러운 스파이디가 더 좋다는 사람들로 호불호가 갈리면서 끊임없이 두 작품이 비교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어메이징 스파이더멘> 2부작은 실패한 리부트다. <스파이더맨 3>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에도 3부작 중에서 최고의 흥행 성적을 올린 것에 비해 이 2부작은 비평면에서나 흥행면에서나 모두 실패하며 결국 소니가 마블에게 제작권을 넘기게 되는 원인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인터뷰>로 인한 본사 해킹 사건 등 다른 외부 요인 역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역시 영상미와 액션인데, 거미줄을 활용한 웹슈터 액션이 굉장히 클래지컬하면서도 화려해 코믹스의 팬들과 일반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렇게 스파이더맨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집’인 마블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디가 자신의 MCU 데뷔작인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바 있기에 더더욱 이 <홈커밍>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다른 히어로도 아니고, 마블 코믹스의 모든 영웅들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스파이더맨이 드디어 전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확장성이 높은 세계관에 등장하다니!
영화는 작중 시간대로부터 8년전인, 뉴욕에 치타우리 군대가 침공한 <어벤져스 1> 사건의 뒷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은 이 사건은 2012년의 이야기고, <홈커밍>의 작중 시간대는 분명히 <캡틴아메리카 : 시빌워>의 독일 공항 전투로부터 2개월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인데 이는 명백한 설정 오류라는 것이다. 처음 영화를 볼 때 ‘8년 후’라는 자막이 의아해서 영화가 끝난 후 찾아봤더니 역시 나만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 아니더라.<시빌워>에서 어벤져스가 활동한지 4년이 됐다는 대사도 있었고 그동안 MCU의 시간대가 영화가 개봉하는 현실의 시간대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사들이 있었는데도, 그리고 케빈 파이기를 비롯한 마블 스튜디오에서 이 사실을 몰랐을리도 없을텐데 대체 왜 이런건지 궁금하다. 이런 설정 오류는 단순히 마블의 영웅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마블 코믹스와 MCU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아쉽다. (나중에 케빈 파이기가 설정 오류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어쨌든 이 <홈커밍>이 MCU 페이즈3에 소니와의 협상이 타결되면서 뒤늦게 계획에 편입된 것을 감안하면 과거의 이야기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뽑아내는 마블 스튜디오의 기획력과 MCU의 방대함에 새삼 놀랐다. (뭐 이건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거지만.) 어쨌든 그렇게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면 마블스튜디오 특유의 로고가 무려 스파이더맨 메인 테마를 변주한 배경음악과 함께 나오는데,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전율과 감동이 동시에 느껴졌다.
제목인 ‘홈커밍’은 스파이디가 마블 스튜디오로 돌아왔다는 뜻과 더불어 미국 십대들의 홈커밍 파티를 의미하는, 그러니까 하이틴 무비라는 두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제목에 충실하게, 이 영화는 마블코믹스 최고의 인기 히어로이자 MCU의 새롭고 젊은 (차라리 어린, 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지만) 히어로를 소개하는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면서 동시에 15실 피터 파커의 학교 생활과 더불어 영웅으로서의 정신적인 성장을 다루는 훌륭한 하이틴 무비이다. 앞으로 개봉할 <어벤져스 : 인피티니 워>와 <어벤져스 4 (가제)>에서 주요 히어로 몇명이 죽을 예정이라고 밝힌 것과 더불어 어벤져스의 주역들이 활약하게 된지 햇수로 벌써 6년이 되어간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상대적으로 최근에 솔로무비가 나온 히어로들이 앞으로 어벤져스에 합류하고, 주역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야 한다는 마블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나 스파이더맨이 겨우 14~15살의 나이로 <시빌워>에 참전한 것에 대해 당시 감독이었던 ‘루소 형제’가 직접 “소년병을 연상시켜서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였다고 언급한 것에서 마블이 앞으로 스파이더맨을 스스로 동기와 책임감을 가진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성장시키려 한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는데, 그러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보여진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고,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가 대학생이라면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아직 어린 고등학생인데 (어쨰 갈수록 나이가 어려지냐) 이러한 차이에 따른 작품의 분위기 차이도 두드러진다. 영웅의 고뇌가 두드러졌던 피터 파커, 그웬과의 로맨스가 아름다웠던 피터 파커와는 달리 하루빨리 어벤져스의 멤버가 되고 싶어서 학교가 마치기만을 기다려 동네를 날아다니며 영웅노릇을 하는 미숙한 피터 파커의 모습은 낯설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신선하다. 이러한 모습을 톰 홀랜드가 잘 연기해준 것 같다. 특히나 작품 후반부의 무너진 건물 파편에 깔려서 구해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영락없는 10대 청소년 피터 파커의 모습이지만 이어서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스파이더맨 가면을 보고는 “힘내, 스파이더맨. 힘내!”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스파이더맨으로서 각성하는 영화 최고의 명장면의 연기는 감탄스러웠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이러한 피터의 각성에는 그냥 억만장자 플레이보이인 줄만 알았던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직접 발탁한 피터에게 의외로(?) 아버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어벤져스의 수장 아이언맨으로서 스파이더맨을 성장시키려는 멘토스러운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 것 역시 컸다.
토니가 피터에게서 슈트를 뺏어가면서 한 “슈트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슈트를 가져선 안돼”라는 대사는 자신의 가슴에 박혀있던 아크 원자로를 제거하고 그 원자로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모습과 함께 “I am Iron-Man (나는 아이언맨이다)”이라는 독백으로 끝나는 <아이언맨 3>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은 토니가 그동안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아크 원자로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아이언맨의 상징인 아크 원자로가 몸에 장착되어 있지 않아도 (슈트에 들어갔겠지) 여전히 아이언맨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명장면이다. 사실 “I am Iron-Man”이라는 말은 <아이언맨> 트릴로지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1편에서도 이 대사와 함께 영화가 끝나는데, 이 경우에는 토니가 자신이 아이언맨이라는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밝히는 모습이었다. 이 경우는 자신의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2편에서는 이 대사가 등장하지는 이반 반코가 자신의 슈트와 아크 원자로를 모방하여 여러 해머 드론들과 위플래쉬 슈트를 만들어내서 자신에게 위협을 강하지만 결국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 자신 하나라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만약 피터가 좋은 슈트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슈트에 의존해서 활약을 할 때만 스파이더맨이라면, 피터는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스파이더맨으로서 활약하면 안된다는 것이 토니의 영웅관이자 마블의 영웅관인 것이다.
결국에는 피터가 이를 통해 예전의 (시빌워에서 잠시 나왔던!) 허접한 슈트를 입고 벌쳐를 막아내면서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진정한 영웅으로 스스로 한단계 성장하는 것은 물론 토니에게도 인정받게 된다. 아직 미숙해서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어린 스파이더맨과 이를 도와주는 것이 아이언맨이라니! 마블의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놀랍다. 마치 슈퍼히어로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해서 소개하고,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시키고, 이 영웅들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내부에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탁월한 성장담을 제시하고 있다.
빌런인 벌쳐 역시 인상적이었다. 배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키튼의 연기 덕분에 더욱 살아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훌륭하게 묘사되었다. 기존의 MCU 영화들이 늘 지적받았던 부분이 바로 빌런에 대한 것이었는데 빌런들을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활용한다거나, 퇴장이 허무하다거나, 캐릭터가 찌질하게 묘사되었다는 등 전반적으로 아쉬웠던 것과 달리 벌쳐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면서 스파이더맨을 위협했고 재등장의 여지도 남겼다. 빌런이 된 동기 역시 단순히 찌질한 사상이나 복수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피터가 리즈와 함께 툼스의 차를 타고가는 장면 역시 명장면인데, 얼굴 표정이 점차 변하는 마이클 키튼의 연기와 얼굴에 신호등의 빨간 불빛이 비치는 묘사 등의 연출이 뛰어난 장면을 만들었다.
물론 <홈커밍>이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아니다. <스파이더맨 2>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최고의 히어로무비를 다룰 때 늘 이름이 불리는 작품이고, <스파이더맨 1> 역시 뛰어난 작품이다. <홈커밍>이 그와 비슷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긴 하지만 분명히 아쉬운 점도 더러 보인다.
가장 큰 단점은 부족하고 심심한 액션이다. 스파이더맨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웹슈터 액션이 너무 빈약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액션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빌딩 숲 사이를 시원하게 활강하는 웹슈터 액션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뭐, 피터의 동네인 퀸즈에 그런 마천루가 어디있느냐~, 이 작품은 어리고 미숙한 피터 파커의 영웅으로서의 성장담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액션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등의 이유로 변명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파이더맨 무비와 마블의 슈퍼히어로 무비에 가지고 있는 액션을 통한 장르적 쾌감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치도 채우기에는 조금 모자란 수준인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시빌워>에서 봤던 스파이더맨이 맞나, 싶을 정도로. 두 작품의 감독이 달라서 액션 시퀀스 연출 방식이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실 이 외에 뚜렷한 단점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잘 만든 영화이지만, 기억하자. <홈커밍>은 히어로무비이고, 히어로무비의 본질은 어느 정도 액션이라는 장르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지금 슈퍼히어로 장르와 확장세계관 분야에서 마블이 압도적으로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 그럴 것이기에 딱히 큰 걱정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홈커밍>은 그랬다고. 부디 스파이더맨이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4>를 거쳐 한층 더 성장하여 2019년으로 예정된 <홈커밍 2 (가제)>에서는 여러단계 향상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결론을 내려보자면 이전 스파이더맨 영화들과 비교해도 <홈커밍>은 좋은 스파이더맨 영화인 건 맞지만 최고의 스파이더맨 영화는 아니다. 마블코믹스 최고 인기 히어로의 첫 MCU 솔로무비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마블은 이 영웅에 MCU의 미래를 맡겼다. 이제 다시 마블과 스파이더맨을 믿고 지켜봐야겠다.
"약은 약사에게, 슈퍼히어로는 마블에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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