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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6일 작성글) <부산행>,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할 압도적 에너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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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26일 작성글) <부산행>,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할 압도적 에너지

김아몬드 2017. 1. 3. 00:59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2016년 7월 26일에 작성했던 리뷰글을 티스토리에 옮겨온 것입니다.

<부산행>. 이 영화를 본 건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거의 일주일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이 기대작에 대해 리뷰를 쓰는 것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꽤나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낼 것입니다. (물론 수많은 토론과 논쟁, 심지어는 전문 무속인들의 분석까지 이끌어냈던 지난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이었던 <곡성>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면에서요.)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좀비 영화를 보아왔지만, 그 중 한국영화는 없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좀비버스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좀비라는 콘텐츠가 그 특성 상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매니악한 인기를 끌어왔기 때문에 쉽게 좀비 영화를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 덧붙이자면, 그동안 우리나라의 CG 기술이 할리우드만큼 좀비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기에는 떨어져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 블록버스터 <월드워 Z>가 우리나라에서 52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것과 더불어 좀비 장르와 마찬가지로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끌던 오컬트 장르의 <검은사제들>이 강동원이라는 스타파워와 김윤석, 박소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544만명으로 흥행에 대성공한 것을 보면서 2016년에 개봉 예정인 한국 최초의 좀비버스터 <부산행> 또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 <사이비>, <창> 등 굵직굵직한 사회 문제들을 어쩌면 불편하기까지 한 시선으로 강렬하게 다룬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바, 그래서 저는 걱정이나 우려보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 데뷔작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월요일), 부산행이 동원한 관객 수가 500만명을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산행>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의 극초반인 도입부를 지나 부산행 KTX 101호 열차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결말까지 쉬지 않고 질주하는 에너지입니다. '좀비'와 '달리는 KTX 열차 속'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공간을 활용한 서스펜스와 액션을 그 동력으로 한 이 영화는 정말이지 KTX 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가지고 시종일관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마저도 이 처절한 사투 속으로 밀어붙입니다. 마동석과 공유, 최우식 세 사람이 9호차에서부터 15호차까지 좀비들을 뚫고 전진하는 시퀀스는 놀라울 정도로 몰입도가 높은데요,  그 주역은 다름 아닌 마동석입니다. 그가 맡은 '상화'역은 마동석의 평소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마냥 그의 매력과 에너지를 가감없이 보여주는데요, 극 중 가장 좋은 쪽으로 인상깊은 역할을 꼽으라면 단연 '상화'가 먼저 생각날 정도로 그의 활약을 눈부셨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상화'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조금 이른 감이 있는 퇴장을 한 것에 대해 아쉬워 한 관객들도 많았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상화' 캐릭터의 완성이야말로 바로 희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딸의 이름을 유언으로 남기면서 한 희생말이죠. 그리고 '상화'는 좀비와의 액션, 눈물겨운 희생 말고도 <부산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가지 더 해냈는데요, 바로 공유가 연기한 '석우'의 감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초중반부까지 '석우'는 '상화'와 '성경'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도 객차 문을 닫았다가 이내 다시 열어준다든지, 딸 '수안'에게 "이런 상황에선 다른 사람들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등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언행을 보여줍니다. '상화'는 이런 '석우'와는 다르게 대전역에서 사람들이 모두 들어올때까지 대합실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주는 등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러한 '상화'를 만나며 '석우'도 변화합니다. '석우'의 변화야말로 <부산행>의 이야기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에 '상화'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 일행을 마지막까지 방해하는 '용석' 역의 배우 김의성씨의 연기는, 연기란 것을 알면서도 격한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우리는 KTX 열차 속 군상극의 등장인물들이 우리가 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며 다른 이들을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물론 '용석'은 뼛속까지 나쁜 극단적인 인물로 그려지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극단을 통한 불쾌함의 유발은 연상호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서 자주 보여줬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용석'의 행동은 악행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좀비 디스토피아를 겪어본 적은 없으니까요. 

<부산행>은 이러한 장르적 쾌감과 입체적인 캐릭터들이라는 대중성도 확보하면서 연상호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사회비판적 색채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나아갑니다. 영화의 초반에 안전행정부 (현 행정자치부) 장관이 방송을 통해 좀비 사태를 단순 폭동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말을 하는 장면과 부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의 군인, 경찰들조차 좀비가 되어 주인공들을 공격해오는 장면 등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보아온 정부와 공권력의 무능함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는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를 풍자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산행>이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 사회 비판이 많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부산행>도 전작들 만큼이나 사회 비판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쩌면 비겁할 수도 있겠지만 양측의 주장 모두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은 <부산행>과는 달리 제작비가 100억인 영화도 아니고, 스타배우들이 출연한 여름 최고의 기대작도 아니었습니다. 어찌보면 그렇기에 <돼지의 왕>과 <창>, <사이비>는 불쾌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주제 의식을 밀어붙이는 힘과 함께 스토리 전개의 개연성까지 모두 갖춘 수작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부산행>은 분명히 흥행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좀비 영화라는 장르의 특수성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부산행>을 보고난 후 느껴지는 아쉬움들을 이러한 상황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수 만은 없죠.

<부산행>의 스토리 전개에는 불친절한 구석이 많습니다. 물론 좀비 장르의 클리셰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러한 전개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겠지만, 이 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이 보는 블록버스터니까요. <부산행>을 관람한 저를 비롯한 제 주변 사람들이 의문을 느끼는 지점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어쩌다 진양이라는 시골에서 서울역까지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는지, 어떻게 서울까지 바이러스가 올라오는 동안에는 조용하다가 하필 주인공 일행이 KTX를 탄 날에서야 전국적으로 좀비들이 생기는 것처럼 표현되었는지, 바이러스가 서울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전국에 동시에 바이러스가 퍼진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석우'의 회사가 작전을 걸었던 회사가 좀비 바이러스를 유출시켰다는데 도대체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론 영화가 이 모든 걸 설명할 필요는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과도하게 친절한 영화는 지루하고, 거추장스러운 영화죠. 하지만 이것보다는 조금 더 개연성을 가지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한국영화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부담스러운 눈물 짜내기, 소위 '신파'장면은 호불호가 매우 많이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상업영화에서 빼놓을 수도 없는 부분입니다. 분명히 그 특유의 '한국적인 감수성'과 통해 눈물을 흘리며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적지 않게 흥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클리셰의 수준조차 뛰어넘은 한국식 신파를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눈물없는 감동'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왜 우리나라 영화 제작자들은 모르는걸까요? 이런 점에서 <부산행>의 마지막 신파 장면을 비판하는 관객들이 많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석우'의 죽음이 불가피한 상황과, 일때문에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이혼남 아빠라는 설정을 감안하면 그러한 전개가 아주 무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저는 하얀 바탕의 회상씬은 굳이 들어가지 않았어도 될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눈물을 짜내지 않았어도 충분히 슬픈 장면이었거든요. 

이렇게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는 시퀀스가 지나가면 영화는 끝납니다.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긴장하다가 '수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나서야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죠. <부산행>은 솔직히, 예측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몇번 언급했듯이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라는 장르적인 시도와 달리는 KTX 열차 안이라는 특수한 배경적 시도가 맞물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초유의 스케일과 비주얼에서 기반한 압도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아쉬운 부분보다, 만족스러운 부분이 더 많은 폭발적인 영화죠. 허지웅 기자가 "<부산행>은 앞으로도 계속 인용될 만한 영화"라고 했다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산행> 같은 영화는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 차기작은 어떤 새로운 시도가 특유의 에너지와 만나 또 다른 신드롬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러닝타임 내내 질주하는 속도감과 강렬하다못해 압도적이기까지 한 비주얼에서 기반한 장르적 쾌감마저 가라앉히는 한국영화 특유의 감수성"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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