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詩

진은영,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김아몬드 2018. 6. 5. 16:57

ㅡ 진은영,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예은*에게

 


슬픔은 가장 사랑스런 보석일거요,

모든 사람이 그리 아름답게 슬픔을 착용한다면.

세익스피어, 『리어왕』

 


너와 만났더라면

가을 하늘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을 거야

서정주나 세익스피어, 딜런 토마스

너와 같은 별자리에서 태어난 시인들에 대해

종이배처럼 흘러가버린 봄날의 수학여행과

친구들의 달라진 옷맵시에 대해

 

나뭇잎이 초록에서 주황으로 빠르게 변하는 그늘 아래

우리가 함께 있었더라면

너는 가수가 되는 꿈에서 시인이 되는 꿈으로

도에서 라로, 혹은 시에서 미로

건너뛰었을지도 모르지

노래에서 노래로, 삶에서 삶으로

 

그것들은 서로 가까이 있으니까

누군가의 손으로 흩어졌다

손에 붙들려 한곳에 모여드는 카드 패들처럼

 

그러면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아빠는

네가 2학년 3반이었는지, 4반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얘야 그때 네가 반이었더라,

허허 웃으며 계속 되물으셨을 텐데

예은아 이쪽의 흰머리 뽑아다오, 웃으셨을 텐데

 

너는 이제 커버렸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다

바뀐 그림 하나 없이

 

어린 소녀에서 어린 청년으로

아이에서 농민으로

바다에서 지하도로, 혹은 공장으로

너무 푸른 죽음의 잎들

가을인데, 떨어지지 않고 전부 붙어 있다

 

그렇지만 네가 사는 ,

모든 것이 제때에 지는 법을 배우는 거기에서

얘야, 너의 시인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있겠지?

바람소리로 귀뚜라미의 은반지로 침묵의 소네트로

사랑스런 아가씨, 마음을 받아주세요 작은 귀에 속삭이겠지?

 

예은아 거기서도 들리니? 아빠의 목소리가

얘들아, 어서 벗자 이건 너희들이 입기엔 너무 사이즈가 슬픔이다

예은아 거기서도 보이니?

모두에게 제대로 마른 입히려고 진실의 옷을 짓는 엄마가

 

나와 친구들의 얼굴이

맑은 돌들

은빛 물고기처럼 숨어 있다 나타난다

모두 알고 있다 보이지만 너희가 거기 있다는

 

예은아,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거짓됨에 비해,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모시옷처럼

뒤에 돋은 날개처럼

 

양팔 저울의 접시에 고이는 눈물

너의 쪽으로 기울어지려고

광장 가을 하늘이 자꾸만 태어났다 쏟아진다

 


*유예은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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