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무한한 세계관 저 너머로!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계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영화들은 많다. <시민 케인>이나 <네 멋대로 해라>와 같은 고전 걸작까지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제는 할리우드의 히어로 블록버스터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물론 이 커다란 시리즈를 그들과 동급의 반열에 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여러모로 다른 의미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의 새 지평을 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커다란 족적이자 기념비같은 작품이다. 2008년에 <아이언맨>이 개봉했을 때, 마블 스튜디오와 케빈 파이기는 <어벤져스>라는 프랜차이즈를 영화화할 구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지금, 어벤져스와 MCU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그리고 앞으로도 벌어들일 최고, 최대의 프랜차이즈 시리즈다. 그동안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총출동하고, 마침 마블 스튜디오의 10주년 기념작이라는 점이 더해져 개봉 전부터 이미 '무한한' 기대를 받고 있던 인피니티 워는 작성일(5월 18일 금요일) 기준으로 이미 우리나라에서 천만관객을 돌파했고, 전세계에서 16억 달러를 벌어들인 거대 흥행작이 되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거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 속담들이 무색하게 기대 그 이상을 보여준 인피니티 워. 러닝타임 내내 마블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마블 스튜디오 로고는 보통 웅장한 OST와 함께 나타났다. 그런데 세상에! 아무 음악도 깔리지 않은 채로 조용히 깔리는 로고를 보며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이거 뭔가 큰일났다." 그 작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치직거리는 무전 소리와 함께 처참한 아스가르드 난민들의 시체가 화면에 들어온다.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 각성한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쓰러져있는 토르의 모습에서, 헐크를 '즐기며' 주먹만으로 제압해버리는 타노스의 모습에서, 로키와 헤임달의 시체에서,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한지 겨우 5분만에 타노스가 얼마나 강한지, 왜 그 한사람을 멈추기 위해 마블이 10년동안 등장시킨 모든 영웅들이 모여야만 하는지 납득한다.
안토니 루소와 조 루소, 루소 형제 감독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로 MCU에 발을 내딛은 감독답게 캡틴 아메리카를 멋있게 연출할 줄 안다. 프록시마 미드나이트, 콜버스 그레이브와 에든버러의 기차역에서 처음 등장하여 전투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물론 어벤져스 진영에서 가장 멋있는 영웅은 토르였지만, 캡틴 아메리카 등장의 임팩트도 대단했다. 캡틴 아메리카뿐 아니라 전반적인 액션신의 연출 자체가 루소 형제의 특기이고, 밋밋한 액션신으로 부정적인 평가도 여럿 있었던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나 <블랙팬서>에 비하면 박진감있는 인피니티 워의 전투는 확실히 인상적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타노스의 멜서스 트랩 식 사상을 그렇지 않게 그려낸 것도 루소형제의 공이다. 여러모로 루소형제의 역량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미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도 보여준 바 있는 다수의 영웅들을 균형있게 다뤄내는 능력이 이보다 빛을 발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영화가 있을까.
인피니티 워는 MCU의 19번째 영화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미리 봐야하는 영화들이 적어도 10개는 넘는다. 세계관 확장에 따른 필연적인 리스크인 높은 진입 장벽이 있는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아이러니가 마블로 하여금 더 과감히 장대한 스케일의 계획을 세워나가게 하는 셈이다. 지금껏 이토록 거대한 스케일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지닌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있었나. 마블 스튜디오 사무실에는 무려 10년 뒤까지의 영화 대본들이 쌓여있다고 한다. 자신감이 물씬 드러나는 마블의 이런 행보에 앞으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영화들이 더더욱 기대된다.
시작부터 사랑받는 캐릭터를 죽이더니, 결말에 이르러서는 처절한 전투 끝에 끝내 타노스의 핑거스냅을 통해 절반을 사라지는 이야기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관객이 세상 어디있겠는가. 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신규 팬들의 유입과 기존 마니아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마블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우리 영화 진입 장벽 높은거 맞음. 이거 보려면 18편이나 봐야하고 다 이어져있음. 그런데 재밌어서 보게 되는 것도 진입 장벽이 높은 건가? 이거 안보고 못배길걸?"이라고 당당하게 나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마블이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과 우리가 마블에 기대해온 것들을 모두 모아놨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다. 인피니티 워는 마블이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것들, 그동안 우리가 감히 기대도 할 수 없던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영화다. 마블의 클라이막스이자,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내년에 개봉할 <어벤져스 4(가제)>를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다.
+) 박지훈 번역가의 오역 논란. 이젠 말하기도 입아프다. 영화와 시리즈의 맥락 자체를 뒤바꿔버리는 오역이라니. 이 정도면 뉘앙스나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마블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우리가 그동안 기대하지 못했던, MCU 모든것의 충격적인 집대성"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