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6일 작성글) <레디 플레이어 원>, 플레이하는 영화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는 추억을 먹고 자란다. 추억 속의 그 게임, 그 노래, 그 영화에서 파생하여 새로운 게임, 노래, 영화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문화가 세상의 주류로 자리잡는다 해도 추억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복고 열풍과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13년만의 SF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런 추억들을 더 이상 뒷배경에 머무르게 놔두지 않고 최전선에 세운 영화다. 2045년이라는, 최첨단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가 되는 요소들은 역설적으로 8090 시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추억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웨이드 “Z”와 할러데이는 요즘 말로 덕후(미국식으로는 nerd)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덕후의 추억이 얼마나 위대한지, 대중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근작들인 <더 포스트>, <스파이 브릿지>, <링컨>처럼 무게감이 있거나 깊이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러닝타임 내내 대중문화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스필버그는 <죠스>, <쥬라기 공원>, <E.T>와 같은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국 팝컬쳐의 최전선에 섰던 감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그의 150분짜리 덕밍아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비록 오스카 트로피도 탄 노장이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팝컬쳐를 사랑한다고!”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듯한 오프닝 음악 ‘Jump’에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엔딩 크레딧에서 보이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이 꽤나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용산 IMAX LASER 3D관에서 본 압도적인 비주얼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영화 초반부의 레이싱 장면이나 후반부의 전투 시퀀스는 압권. 혹시 이 영화를 2D로 봤다면 지금 당장 3D로 다시 보시길. 4DX로 보면 더 재밌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4D를 안좋아해서…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무리 아이맥스 3D라지만 평일 밤 10시 넘어서 시작하는 영화가 2만원이라니. 진짜 너무한다 너무해. 가뜩이나 오늘 아침에 천원 더 인상한다던데, 아이맥스만 없었으면 니네 갈 일 없었다 이 양심없는 것들아.
이렇게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영화에서까지 아쉬운 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건 꽤나 슬펐던 일이다. 하지만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역시 현실 이야기.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주 무대로 펼쳐지지만, 그에 비해 현실 이야기는 그 두께가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웨이드의 이모는 폭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나?
그런데 도대체 스필버그의 연출,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 뛰어난 비주얼에 확실한 재미까지 보장하는 이 작품을 고작 이런 사소한 아쉬운 점 때문에 깎아내릴 수 있을까? 아쉬운 점 꼽느라 너무 힘들었다. 사랑하는 영화의 아쉬운 점을 억지로 꼽아야 한다니. 영화 리뷰는 역시 힘들어.
영화의 제목 <레디 플레이어 원>은 우리가 게임을 하게 되면 - 특히 오락실에서 - 우리에게 붙는 일종의 가상 이름인 ‘Player 1’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대충 “Player 1 준비하세요!”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우리도 이 세상 속에서 ‘Player 1’으로서 대중문화를 마음껏 향유하며 살아가라는 스필버그의 당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할리데이의 마지막 대사인 “내 게임을 즐겨줘서 고맙네”는 동시에 영화를 즐긴 관객들에게 하는 스필버그의 말이기도 하다. ‘Player 1’ 웨이드가 이스터 에그를 얻고도 게임은 끝나지 않고 게임은 계속 되는 것처럼, ‘Player 1’으로서 우리의 게임도 계속 된다. 앞으로 계속 대중문화를 사랑해달라고, 영화를, 게임을, 노래를, 이 세상의 모든 사랑받을 만한 것들을 천시하지 말고 즐겨달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대중문화를 만들고, 향유해온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스필버그 식의 헌사이다. 왜, 할리데이가 이런 말도 하지 않았나. “게임을 이기는 게 중요한게 아니고, 플레이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마음껏 즐길 준비되셨습니까, Player 1?
“위대한 감독은 덕밍아웃도 위대하게 한다.”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