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신저스>, 우주의 본질이란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인류에게 우주는 미지의 공간이자 미개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외로운 곳이기에 사람들마다 다르게 우주를 받아들이는데,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SF 장르 영화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주를 미지의 두려움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영화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라면, 우주를 미개척의 가능성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확장성이나 폭발력은 그들이 배경으로 하는 우주의 크기만큼이나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패신저스>는 새해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꼽혔다.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훌륭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모튼 틸덤 감독에 할리우드 최고의 20대 여배우인 제니퍼 로렌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쥬라기 월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크리스 프랫이라는 조합은 적어도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작품이라도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우주선에서 90년 일찍 동면에서 깬 남녀'라는 설정 또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서두에 밝혔듯이 우주는 그 자체만으로 영화의 배경이 될 수 있을 뿐더러, 우주라는 특수한 공간과 상황에서 파생되는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던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는 모두 이러한 우주의 매력을 매우 효과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인데, 이들을 비롯한 우주 SF 영화들이 담아내는 주제들은 대부분 '미지의 공간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개척지인 우주의 무한한 확장성에 대한 탐구'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패신저스>는 이러한 우주의 본질을 다루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우주의 불확실성도, 무한한 확장성도 아닌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다. 물론 그 로맨스가 새로운 식민지 행성인 '터전 II'로 가는 우주선 아발론 호에서 예정된 도착시간보다 무려 90년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존의 로맨스 영화들과는 다른 <패신저스>만의 로맨스 스토리를 구축할 수도 있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전개에 그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동면기 오류로 일찍 깨어난 짐이 우주선에서 홀로 폐인처럼 살다가 결국에는 오로라를 동면에서 깨워내버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평범보다도 나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오로라는 짐과 사랑에 빠지는데 이 둘의 로맨스는 우주 유영 시퀀스를 제외하면 굳이 우주가 배경이 아니더라도 무관했을 법한 장면들로 묘사된다. 우주를 단순히 소재와 배경으로 활용하는데에 그쳤다는 지적은 이에 기반한 것인데, 영화를 호평하는 측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의견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 두 주인공이 맞는 위기도 우주라는 극한 환경 자체가 주는 두려움과 이에 맞서는 생존 본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가장 큰 단점인 '우주를 본질이 아닌 소재로 활용했다'는 점 외에도 여러 단점들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자잘한 과학적 고증 오류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스톡홀롬 증후군마저 떠오르는 결말 또한 굉장히 아쉬웠다. 결말 자체가 아쉬웠다기보다는, 감정선의 묘사는 물론이고 개연성마저도 빈약한 채로 진행된 후반부의 너무도 급격한 변화들에 대해서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모튼 틸덤 감독의 전작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면서 화려하지는 않아도 중심을 잡은 채로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에 개연성을 주는 연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패신저스>는 오히려 커진 스케일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정반대 스타일의 연출에 그치고 말았다. 클리셰를 클리셰같지 않도록 연출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은 물론 모튼 틸덤 감독 본인에게도 꽤나 아쉬운 작품일 것이다.
영화에서 빛나는 것은 오직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 뿐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아름답게 나온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의 초반부는 홀로 깨어난 짐을 비추기 위해 크리스 프랫이 혼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만, 제니퍼 로렌스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인 오로라 레인이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부터는 결말까지 시종일관 이야기와 인물들의 감정의 중심이 되어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다. 반면 크리스 프랫이 맡은 짐 프레스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 캐릭터나 원래 보여주는 그의 성격에 비해 얌전하고 진중한 역할이어서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색하거나 위화감은 들지 않는 정도로 무난하게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제니퍼 로렌스와의 훌륭한 케미도 선보인 것은 맞다.
개인적으로 <패신저스>는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40%라는 나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기대치를 많이 낮추고 영화를 봤음에도 관람하는 내내 아쉬운 점들이 하나둘씩 보여서 아쉬운 작품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번 리뷰는 며칠 전에 <라라랜드> 리뷰 (http://almondnote.tistory.com/18) 를 굉장히 치열하게 써낸 직후에 쓰는 리뷰여서 그런지 마치 영화 속 '중력 손실' 현상처럼 갑자기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붕붕 떠다니기만 하면서 하나의 완결성있는 문장을 만들어내기 굉장히 힘들었다. 사실 영화 리뷰란게, 재밌게 본 영화는 그만큼 리뷰를 쓰기도 재밌고 할 말도 많지만 실망한 영화는 리뷰를 쓰는 것도 힘들고 할 말도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우주를 본질이 아닌 소재로 삼은 영화의 말로." (5/10)